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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 de deux: 상실의 끝에서 춤추다

  1. 영감의 원천



피아노 독주곡 "Pas de deux(파드되)"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곡은 어느 날 제가 문득 떠올린 아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작곡되었습니다.


***


두 사람은 한때 파드되를 추던 발레 무용수였다. 완벽하게 호흡이 맞던 무대 위에서

그들은 늘 함께 움직였다.


그러던 중 아내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다. 남자는 그 후로 더 이상 춤을 추지 못했다.

그는 괴로움 끝에 아내의 시체를 무덤에서 파내어 집으로 데려와 함께 지냈다.

음악을 틀고, 말을 걸고, 홀로 그녀와 파드되를 췄다.


그때부터 꿈이 시작됐다.

꿈속에서 아내는 말없이 울고만 있었다. 춤을 추지 않았고, 손을 잡아주지도 않았다.

그녀의 울음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남자는 마침내 깨달았다.

그녀를 붙잡고 있는 이유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이라는 것을.

그는 다시 무덤으로 가 아내의 시체를 묻었다.


그날 밤, 아내는 꿈에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울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음악이 흐르고, 두 사람은 파드되를 췄다.

완벽하게, 살아 있을 때처럼.


아침이 되었을 때 남자는 알았다.

이제 정말로 그녀를 보냈다는 것, 그리고 사랑은 꿈에서만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


이번에 발표한 "Pas de deux"는 위 이야기 속 남자의 감정선을 음악으로 표현한 곡입니다.

함께 발레 무용수로 일하던,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는 괴로움에 요동치다가,

결국 상실을 받아들이고 꿈 속에서 아내와 파드되(클래식 발레에서, 주역 발레리나와 그 상대역이 추는 춤)을 추게 되는 남성이 느꼈을,

일련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그대로 따라가며 음악적으로 토해 내었습니다.




  1. 간략한 악상 해설


(1)


Dolorose e sognante(비통하면서도 몽환적인)으로 곡이 시작합니다.


오른손 내성에서 주제 멜로디가 연주되는 동시에 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일감있게 이끌어갈 특징적인 16분음표의 동음반복 모티브가 등장합니다.


함께 발레 무용수로 활동하던 남자와 아내의 모습을 비추는 악절로,

아름다운 선율 속에 앞으로 닥칠 불행한 운명을 예고하듯 고요한 비애가 스며 있습니다.


(2)



도입부의 주제 멜로디가 우울감 있는 화성적 분위기 속에서 재현됩니다.


남자와 아내가 무대 위에서 여전히 발레를 추고 있는 장면이지만, 곡조가 점진적으로 어두워지고 주제 멜로디가 다소 드라마틱하게 발전하면서 불길한 기운을 고조시킵니다.


00:34부터 음악의 서사는 하나의 절정에 도달하며, 아내가 사고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을 암시합니다.

음악적인 긴장감이 극대화되도록 상승하는 음계로 멜로디를 발전시킴으로써 아내를 잃은 남자의 내면에 쌓여가는 비통함과 혼란을 담아냈습니다.


(3)


이 악절은 아내를 잃은 남자가 마주한 깊은 상실과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서두에서 제시되었던 주제 멜로디가 다시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지만, 모든 것이 달라져 버린 상황 속에서 장조의 선율에 잠재되어 있던 비애는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부각됩니다.


감정과 미묘하게 어긋난 non legato(음과 음 사이를 끊어서 연주하는 주법)의 연주는, 극도의 상실 속에서 그의 내면에 이성의 균형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암시합니다.


(4)



이 악절에서는 상실의 슬픔에 잠식되어 점차 현실과의 경계를 잃어버린 남자의 감정이 표면으로 드러납니다. Lento e soave, un poco malinconico(느리고 온화하게, 은은한 우수를 머금은 듯)으로 연주합니다.


아내를 잃은 후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을 만큼 괴로워진 그는 결국 무덤에서 아내의 시체를 다시 파내어 집으로 데려오고, 그녀와 함께 살아가기를 선택합니다.


축 늘어진 시체의 몸을 붙잡은 채 추는 파드되는, 둘이 함께이지만 사실상 혼자서만 이어지는 춤입니다.


오른손의 9잇단음표 아르페지오와 왼손의 5잇단음표스러운 선율이 서로 엇갈리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함으로써, 상실로 인해 이성을 놓아버린 채 비현실적인 이상과 몽환 속으로 침잠한 남자의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5)



이 악절은 상실 속에서 광기에 휩싸였던 남자의 꿈에 아내가 나타나는 장면을 그립니다.


살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 아내는 눈물만 흘리며, 남자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집착이었음을 자각하게 합니다.


비로소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남자는 아내의 시체를 다시 무덤에 묻어주고, 그 이후 이어지는 꿈속에서 아내는 웃는 얼굴로 그의 앞에 나타나 손을 내밉니다.


이 장면은 주제 멜로디의 음계를 차용해 새롭게 구성된 선율을 통해, 집착을 내려놓은 뒤에야 비로소 가능해진 화해와 재회의 정서를 표현합니다.


00:26부터 곡조는 급격히 고조되며,

상실의 아픔 속에서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남자의 복합적인 감정을 그려냅니다.

이는 꿈속에서 비로소 파드되를 추게 될 남자와 아내를 위한 음악적 클라이맥스로 이어집니다.


(6)


Vivace appasionato(빠르고 열정적으로)


박자가 3/8으로 전환되며, 곡은 명확한 왈츠풍으로 접어들어 전체의 클라이맥스를 형성합니다.


꿈속에서 남자는 아내와 격렬한 파드되를 추며, 기쁨과 사랑, 슬픔과 후회, 상실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억눌러 왔던 모든 감정이 내면에서 한꺼번에 요동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주제 멜로디를 급한 왈츠 리듬 위에 거의 그대로 재현하되, 보다 서정적으로 고조시켜 전개함으로써, 꿈속에서만 가능한 낭만적이고도 비극적인 파드되를 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7)



Andantino sognante(조금 걷는 속도로, 몽환적으로)


이 마지막 악절에서는 음악이 점차 잦아들며, 격정적인 파드되 이후 남자가 마침내 상실을 받아들이는 내면의 변화가 드러납니다.


주제 모티브는 다양한 화성 위에서 조용히 반복되며, 더 이상 붙잡으려 하지 않는 상태에 이른 그의 마음가짐을 담담하게 비춥니다.


말미에 곡은 smorzando로 서서히 흩어지듯 사라지며, 소리보다 긴 여운을 남긴 채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1. 앨범 아트

Pas de deux, 3 (nathalie straseele)
Pas de deux, 3 (nathalie straseele)


이번 곡의 앨범아트로 프랑스의 훌륭한 화가 nathalie straseele씨의 작품을 선택하였습니다.

해당 작품의 세부사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Album art:


Pas de deux, 3

Acrylique sur toile

nathalie straseele


"Je m'intéresse à nos mouvements intérieurs."
(저는 인간 내면의 움직임에 관심이 있어요.)
-nathalie straseele 



제 곡 "Pas de deux"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녀의 멋진 작품을 앨범아트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1. 사운드 엔지니어링



이번 곡 작업의 가상악기로 Garritan CFX Concert Grand의 Solo Piano1 음색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가상악기를 몇 달 전 선물해주셨던 HyungMook Kim 형님께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꽤나 클래시컬한 분위기의 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묵직하면서 깊이가 있는 사운드 디자인을 목표로 작업을 해나갔습니다.



이번 곡 전부분이 녹음된 상태의, 모든 노트들이 미디에 찍혀있는 화면입니다.

원래 저 가운데 빈 공간에 중음역대에서 노는 악상들이 존재하였는데, 잡음을 컨트롤하기가 특히 어려워서 결국 포기하고 해당 악상들을 전부 삭제하기로 했습니다. 현재의 발매된 음원은 이 악상들이 삭제된 버전입니다. 많이 아쉬웠지만 그만큼 곡의 구조가 간결해지고 흐름이 덜 느슨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대략적인 작업 과정으로, 먼저 곡을 직접 연주하여 녹음을 한 후, 각 음의 세기나 터치, 리듬 등을 극도로 정교하게 미세조정하여 최대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자 하였습니다.




제가 항상 힘들어하는 잡음 컨트롤 작업은 이번에도 역시 고역이었습니다.

위 사진에서처럼, 20여개의 서로 다른 세팅값의 가상악기를 마련하여, 기본으로 녹음했던 가상악기의 음 중 소리가 부자연스럽거나 못생긴 것들을 이 잡듯이 골라내어 다른 가상악기 세팅의 소리로 대체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매우 섬세하고 예민하게 작업하였고 이 과정에서만큼은 소리의 아름다움보다 잡음의 통제에 더 가중치를 둠으로써, 음악의 아름다움을 다소 감소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감상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수 있는 잡음을 극도로 최소화하려고 했습니다.

보통 여기서 소리를 많이 지르고 책상을 때려부시게 됩니다. 이 과정만 몇 주 이상 걸린 것 같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 시스템으로 돌입할 수만 있다면, 저는 5일에 한번씩 아름다운 음악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는 거의 분기에 한 곡 정도를 발표하는 페이스가 되었습니다.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10월 말에 시작하여 12월 초에 발표하였기 때문에 한달이 조금 더 걸렸네요.

사실 이 곡을 작업하기 전에 진행 중이던 작업이 있었는데, 잡음 컨트롤을 두 달간 붙잡고 있다가 결국 포기하게 되었고, 그때의 좌절감이 이 곡을 완성하는 데에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었기 때문에, 사실상 이 곡은 3개월 이상의 기간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생각해 낸 주제 멜로디(곡 도입부에 등장하는 멜로디)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악상을 떠올리는 과정 자체가 매우 즐거웠습니다.

머리를 이성적으로 쓰며 아름다운 악상을 구상하려고 하기보다는, 피아노 위에 앉아 계속 연주해보며, 음악적인 몰입의 경지를 꾀하고, 몰입에 들어선 이후에는 제 음악적 영혼이, 현재 쓰고 있는 악상과 동화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오직 감정이 이끄는대로, 차가운 이성의 개입은 최대한 절제시킨 채로, 음악적 감정이 내면에서 폭발하며 온몸이 불타오르는 그 순간을 마음껏 즐기며, 동시에 숨을 헐떡이며, 제 음악적 영혼이 마구 토해내는 악상들이 제 손가락을 통해서 건반 위에서 현란하게 출력되는, 그러한 다소 즉흥적이고 몹시 감정적인 방식으로, 이번 곡이 쓰여졌습니다.


  1. 마무리&다음 작품 미리듣기



곡을 쓰고 음원을 완성해가는 작업은 항상 괴롭습니다. 창작의 희열이 분명 있지만, 창작물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을만큼 어느정도의 완성도를 달성하기까지는 매우 고단한 노력과 끈기가 필요합니다.

이번 곡 작업을 하면서도 욕도 많이 했고 책상도 많이 내려치고 소리도 많이 질렀습니다. 화가 치밀어 올라서 너무 흥분해서 숨을 헐떡거리기도 하였고 소리를 너무 크게 질러서 거실에 있던 소미(반려견)가 화들짝 놀라서 짖는 날들도 있었죠.


이러한 고통들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창작의 희열, 좋은 영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제 마음속에 갑자기 찾아왔을 때의 짜릿함, 고된 사운드 작업을 하던 중 문득 제가 쓴 악상이 너무 아름답게 들릴 때의 행복감 등이 제 내면을 너무나 풍요롭게 하기에,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에 곡 작업을 하다가 문득 아예 다른 곡을 위한 악상이 떠올랐고, 그 곡의 악보까지 이미 완성하였습니다. 순수하게 악상만을 생각해내고 사운드나 음질에 대한 고민 없이 "음악" 자체에 대한 구상만을 하는 이러한 순간에 가장 큰 기쁨을 느낍니다. 아마 또 몇 주간은 그 곡을 위한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매우 밝은 분위기의 에튀드스러운 곡이며, 음형 자체는 에튀드스럽지만 동화같은 선율과 밝고 낭만적인 화성감을 통해서, 독특한 저만의 짧은 에튀드를 써낸 것 같습니다.


짧게 스케치하듯이 연주한 다음 곡의 힌트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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